땔감 하는 날
연세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를 위해
전 주민이 나무하는 날도 있었다.
일종의 땔감 구휼이다.
이날은 마을 전체가 술렁였다.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르고,
아낙들은 이장 집에 모여 식사를 준비했다.
솥뚜껑에서는 부침개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올랐다. 85
고대부터 유대 격언에서는 혀를 화살에 비유한다.
한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다.
왜 다른 무기 이를테면 칼이 아닌 화살인가요?
랍비가 대답했다.
칼은 뽑았다가도 마음이 누그러지면 거둘 수 있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87
할머니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고사리, 숙주, 통감자, 밀가루 묻힌 파를 듬뿍 넣어 닭 한마리와 함께 끓여 냈다.
다진 마을과 고추장 역시 넉넉하게 풀면
걸쭉하면서도 얼큰한 닭개장이 완성됐다.
할머니가 요리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함박눈 내리는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닭개장을 먹으러 오라 알렸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으로 모여 들었다.
방 안 혹은 김이 설설 오르는 가마솥앞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내가 기억하는 닭개장은
추운 겨울날 사람들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만드는
마법의 요리였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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