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빠리 슈퍼맘입니다.
어릴 적 한 친구네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엄마가 그 집에 가서 책을 가져 오라시더군요.
친구네랑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이었는데 통로만 달랐습니다.
아파트 옥상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세계명작 문고판 전집을 낑낑대며 가져오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책방사업을 하기 위해 떠나던 친구네 부모님이 저랑 동생들 읽으라고 남겨준 고마운 책들이었습니다.
책 종이가 기억납니다. 하얀색이 아닌 약간 누런색에 그림도 판화같이 간단히 그려진,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저한테는 썩 읽고 싶은 맘이 생기는 책은 아니었어요.
아주 드물게 책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마다 교과서가 아닌 책을 본다는게 참 신기했죠.
친구네가 주고 간 그 세계명작 문고판들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없었던 덕에 더 많이 상상하며 읽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에 나온 책들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있게 잘 만든 전집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40년전 제가 읽은 그 누우런 한국 문고판과 프랑스에서 제 아이들이 자라나며 읽는 문고판이 너무 비슷합니다. 겉표지만 다를 뿐, 누런 종이며 판화로 찍어낸 듯한 밋밋한 그림.
저는 프랑스에서는 아이 책들의 질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실제로 읽는 수많은 고전들은 전혀 아니군요. 어떻게 40 몇 년 전에 제가 읽은 그 문고판이랑 같은 수준인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읽어오라는 고전들을 사다보면 처음엔 좀 놀랐답니다. 가격이 저렴하긴 하지만 책이 작고 가볍고 질도 낮고 확 끌리는 맛이 없더군요. 한마디로 대실망. 책방에 가서 골라보다 보니 고전들은 거의 다 이렇더군요. 하드보드지로 만든 책들은 겨우 몇 권 구했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저렴한 고전들은 누구나 쉽게 사볼 수 는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2-5유로 사이에 살 수 있는 고전들이 널려있군요. 학교에서 읽으라는 고전의 범위는 한정이 되어 있다 보니, 중고사이트나 벼룩시장에 가보면 권당 1유로도 주지 않고 살 수 있는 고전들이 흔합니다.
한국의 멋지고 예쁜 양장판 책이 물론 더 좋지만 구입하는데 부담스러울 생각을 하면, 싸고 가벼운 문고판 고전을 파는 프랑스에서 책을 가까이 하는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고판으로 나오는 책자들은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서 책을 어디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장점도 있지요. 한국 책들은 크고 무거운 편이라서 가방에 따로 넣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는 게 큰 차이랍니다.
한국 책들은 반질반질한 촉감이 매끈한 종이에 여백이 많은데, 프랑스 문고판 책들은 꺼칠하면서 여백이 적은 단점도 있지요.
일단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지만 좋은 책을 호주머니에 넣고 아무 데나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한국식 크고 무거운 책에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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